훈련소 2012.03.13 07:30 리스트로

『첩첩산중』군장 여러개를 메고 행군하는 그의 정체?

Posted by 공군 공감

첩첩산중(疊疊山中)
 공키피디아 - 입대장병 훈련백과 






첩첩산중(疊疊山中) : 여러 산이 겹치고 겹친 산 속.



 

 엄홍길씨도, 故 박영석씨도 아닌, 그렇다고 1박 2일 멤버도 아닌 사람들이...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이 훈련'때처럼 이렇게 크나큰 등짐을 지고 산에 오를 일이 있을 것인가. 


 저질 체력, 그리고 저질 정신력이 그토록 원망스러워 지는 훈련.
지난 화에 이어서 아직, 행군은 끝나지 않았다.







사회에 첫 발?
  쪽문을 넘어 철조망을 넘어... 어느새 훈련병들의 발걸음은 부대 밖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훈련병 신분으로 처음 맡아보는 바깥공기의 내음<주1>과 처음 밟아보는 바깥 땅의 촉감은 - 그야말로 싱그러움 자체였다. 하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으로는 내가 없어도 바깥 세상이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는 쓸데없는 야속함이 들었다. 불과 한 달만에 급격한 신분의 전환을 겪은 '훈련병의 이유없는 반항(?), 사춘기'였달까? 한적하고 고즈넉한 '시골마을'을 걷고 있자니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어쩜 그리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아스팔트 도로를 지나 서서히 본격적인 산길 코스로 접어들기 걷기 시작했다. 필자 앞에 나타난 산길은 평평하고 걷기 좋은 그런 산길이 아닌 정말 좁고 구불구불한 흙길이었다. 특히나 필자가 훈련했을 당시는 엄청난 태풍<주2>이 휩쓸고 지나가 땅이 무척이나 질척이던 상태였다. 온통 산 길가는 돌멩이 투성이였고, 이 때문에 안전사고를 직감한 분대장과 소대장님들은 행군 중에 돌멩이를 일부러 밑으로 굴리지 말라며 연신 소리를 질러대었다.
 서서히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더욱 더 커져가는 걷는 파동(이전 화 참고 2012/02/28 - 행군 군장. 뭐 이리 많이 싸?『복잡다단하다』), 그리고 그에 따라 서서히 하나 둘 씩 낙오하는 동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앰뷸런스가 산 밑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하나 둘 씩 포기하는 훈련병이 생길때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우리 여기서 포기하지 말자! 다 같이 정상까지 올라가자!"



 힘들수록 책임감이 강해져가는 것일까? 소대근무와 군기근무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한 소대를 이끈다는 책임감으로 행군 중에 훈련병들을 열심히 다독이는 그들.
 하지만 이토록 소리를 질러대어도 그들 또한 '훈련병'일 뿐, 결국 그들도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며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기 시작한다. 이런 훈련병들을 말 없이 도와주는 것은 다름아닌 분대장들이다. 낙오하기 일보 직전인 훈련병들의 군장을 두 세 개씩 어깨에 들쳐메고 힘든 길을 함께 걷는다. 그들 또한 훈련병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훈련병들의 행군을 수없이 도왔을(그리고 앞으로도 도우게 될) 터지만, 행군을 계속 하다 보면 분대장들의 어깨에 얹쳐져 있는 유형(有形)의 - 혹은 무형(無形)의 짐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상에서 먹는 간식 
 앞을 바라보면 볼수록 점점 시야에 들어오는 푸른 이파리의 양이 적어진다. 진주의 하늘과 필자의 몸이 점점 가까워져 감을 이런 식으로 느꼈다.
 얼마나 걸었을까? 오랫만에 마주하는 탁 트인 경광.  내 발 아래에 훈련단 뿐만 아니라 진주시내가 한 눈에 펼쳐져 있는, 한 폭의 그림같은 경치가 펼쳐진다. 그렇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 훈련병들은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겨워 모두 소리를 질러댄다.
 그 곳에서 분대장, 소대장과 잊지 못할 사진 한 장을 촬영한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곳에서 필자가 찍은 사진이다.
 필자의 동기들아! 이 때 기억나니?


 성취감 이외에도 정상에 도착하면 좋은 점 또 하나! 드디어 건빵주머니 한 켠에 두었던 비상식량을 꺼내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간식으로 포카리스웨트와 초코 바, 생수 그리고 빵 하나를 보급해 준 것으로 기억한다.<주3> 
 그런데, 필자의 사무실 후임들에게 물어보니 배급된 간식이 기수마다 모두 제각각이었다. 건빵에 생수만 받은 기수, 초코바와 생수를 받은 기수 등등...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점점 배급되는 간식의 양이 적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기수별로 간식 양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오랫만에 달달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너무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겠다.







이제 딱 반 왔다!

 드디어 길가에서 간식을 맛있게 먹으려고 자리를 찾고 있는 찰나. 어라? 분명 오르막길은 울퉁불퉁 질척질척... 사람의 발걸음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한 거친 산 길이었는데 내리막길은 너무나도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나타나는게 아닌가! 이럴 거면 진작 이리로 올라왔다 내려가지... 라는 원망섞인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생각. 아, 정상에 올라갔다는 건 고작 반 밖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구나! 그렇게 남은 반도 꾸역 꾸역 전우들과 함께 걸어나갔다. 또다시 가다, 서다, 뛰어가다를 반복하면서...


 공키피디아 행군편을 정리하면서, 훈련병 생활중 필자의 생각을 담았던 노트를 펼쳐보니 이런 글귀가 써있다. "이제 행군을 버텨냈으니 2년 군생활도, 그리고 그 이후도 잘 버텨낼 수 있겠지?" 사실 행군은 [힘든 일 백신(vaccine)]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의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앞으로 닥쳐올 힘들 일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백신. 이 것이 훈련단을 수료한 뒤 얻어가는 가장 큰 재산이 아닐까?


* 최근 입대하는 훈련병의 경우 행군 코스가 산악이 아닌 평지로 바뀌고, 코스길이도 40km로 늘어났다고 한다. 덕분에 힘은 덜 들고 행군 시간은 길어진 셈이 됐다. 어라, 아닌가?  행군시간이 길어졌으니 힘은 더 들려나?




 다음 화 "도수체조" 편에서는 과연 필자가 도수체조를 출까요? 안 출까요? 허허...
 여러분의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주1> 코로 맡을 수 있는 향기롭거나 나쁘지 않은 기운.

<주2> 2010년 9월에는 태풍 '곤파스'와 '말로'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덕분에 필자의 훈련은 우비를 입는 것에서 시작해서 우비를 벗는 것으로
           끝났다.

<주3> 693기 여러분. 혹시나 제가 틀려도 너무 뭐라 마시길... 필자의 행군 기억은 '고통스러웠다'만 남기고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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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엠피터

    전 기수보다 간식이 부실하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헌혈 못해서 초쿄파이 못 먹어 거의 울려고까지 했던
    훈련소 동기들이 생각납니다.

    2012.03.13 07:57 신고
    1. 공감짱

      초코파이 하나에 울고불고...ㅜㅜ
      그 서러움이란 훈련소에만 느낄 수 있겠죠?
      200%공감됩니다!!

      2012.03.21 09:12 신고
  2. 티거

    캬 정말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ㅠㅠ

    저때의 마음가짐이 전역할때까지 간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그렇진 않다는거~ㅋㅋ

    그나저나 기훈단 분대장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하고 멋진거같아요.. "기훈단 분대장의 하루" 뭐 요런 기획 한번 해주심 재미날듯!!!

    2012.03.13 09:37 신고
  3. A-662

    읽다보니 정상에 오른 뒤에 하산 할 때의 그 배신감(?)이 다시 밀려오는군요ㅋ 근데 요즘은 기지 외곽도로 따라서 유격장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는 없나요?

    2012.03.13 10:45 신고
  4. 신기한별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012.03.13 14:16 신고
    1. 공감짱

      신기한별님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

      2012.03.21 09:15 신고
  5. 블랙이글스

    두번이나 참가를 해야했던 100킬로 행군 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2012.03.16 13:07 신고
    1. 공감짱

      엄청난 체력과 인내심을 겸비하셨군요!!><멋져부러

      2012.03.21 09:1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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