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를 손으로 돌리던 때의 이야기

Air-Life 2010.06.24 08:20 Posted by 공군 공감




[6·25 참전 조종사가 말하는 6·25전쟁]

2010년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을 맞는 해이다. 공군으로 독립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던 상황에 발생한 전쟁이었던 터라 우리 공군의 전력은 경항공기 22대와 1,877명의 병력에 불과했다. 격변의 시기를 직접 몸으로 체험했고 총 118회 출격 기록을 보유한 한국 공군 6·25참전 유공자회 회장인 배상호 예비역 소장의 자택을 방문하여 원로 공군인에게 6·25전쟁의 교훈에 대해 들어보았다.

Q. 공군에서 복무하셨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공군에 자원입대를 한 게 1949년 2월 15일이야. 그 때 당시 비행기가 타고 싶어서 공군에 자원했었지. 여의도에 공군 활주로가 있을 당시 비행교육대대에 들어가 지상에서 막대기를 잡고 항법, 기상, 엔진 등의 이론 수업을 받다가 L-4를 운영하게 되었는데, 알다시피 L-4는 연락기로 무장능력이 없어서 주로 정찰기로 활용했었어. 1949년 10월 1일에 마침내 공군이 독립하였고 1950년 5월 14일 애국기 헌납운동의 결과로 T-6가 도입되었지. 그 당시 난 L-5로 단독비행을 나가려던 찰나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어.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제트기인 F-86으로 기종 전환을 했고 내가 알기에는 유일하게 제101, 102, 103비행대대장을 모두 거친 후 공군본부 군참부장과 기참부장으로 복무했었지. 이후 군수사령관으로 부임했는데, 그 당시 우방국으로부터 군사원조가 축소되는 시기였어, 군수물자를 활용하는데 있어 잉여물자가 발생하지 않게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이 많았지. 그러다 1977년 12월 공군 소장으로 예편하면서 현역에서 은퇴했지.



Q. 6·25전쟁 당시 우리 공군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A. 6·25전쟁 발발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단 한 대의 전투기조차 없었어. 그래서 L-4/5, T-6등 가용한 항공기를 총동원하여 적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수류탄과 폭탄을 가슴에 품고 출격을 감행했는데 말이야,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를 파괴시킬 수 없었고 북한의 미그기와 대공화기에 쫓겨 다니기 일쑤였지. 그러면서 수원으로, 대전으로, 김천에서 대구를 왔다 갔다 하며 점점 남하하게 되었지. 안되겠다 싶어 미 극동군사령부에 전투기 원조를 요청했고, 1950년 6월 26일 이근석 대령을 비롯하여 선배 조종사를 일본의 이다즈께 기지로 가서 F-51을 인수해 왔지.

그 당시 난 1951년 2월에 사천에서 정식 비행 보수교육을 받고 그 해 4월에 정식으로 Wing을 달게 되었어. 그 후 T-6를 조금 타다가 10월에 처음으로 F-51 Mustang을 타게 되었지. 1952년 1월에는 제10전투비행전대가 생겼지. 미국에서 들여온 F-51 Mustang 20여 대를 보유한 진짜 전투부대였어. 초창기 미 공군 요원들이 우리 공군을 우습게 보았단 말이야. 정식교육훈련을 받지 않았다고 말이지. 그래서 전투기 인도에서부터 작전 출격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종사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했어. 근데 우리 선배들이 승호리 철교를 폭파하면서 미 공군에게 우리의 실력을 입증했지.



Q.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출격은 언제였는지?

A. 1952년 8월에 평양대폭격 작전이 있었지. 대동강 철교 바로 밑에 인민군들이 집결하는 주둔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돌아왔었어. 그 때 당시 평양 인근에 들어섰는데, 고사포가 하늘이 시커멀 정도로 비 오듯이 쏟아지고 있었어. 심지어는 편대장기인지 고사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으니깐 말이야. 그런 치열한 전장에서 용케 살아 돌아 온 것은 굉장한 행운이지.

개인적으로 무장정찰 출격떄마다 신이 났어. 5인치 로켓포 6발과 기총을 1,800발 장전을 하고 기관차를 찾으러 다녔거든. 인민군들이 낮에는 조용하고 밤에 주로 활동을 했는데, 원산에서 평양 사이에 기관차가 주 타깃이 되었지. 로켓포가 터지면서 발생하는 폭음은 굉장했어. 주문진에서 한 발 떨어뜨리면 강릉에서는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렸으니깐 말이지.

더보기- 평양 대폭격 작전이란?


Q. 6·25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A. 60년전에 발발했던 6·25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유비무환의 정신이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서광욱 2010.06.24 1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님의 말씀대로 국가안보를 위하여

    우리 국민 모두가평소에 준비를 철저히 하는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춰야된다고 생각합니다.

    필~승!!

    2010. 6. 24

    공군인터넷전우회(ROKAFIS)

    예비역 병 283기 서 광 욱

  2. 손우석 2010.06.24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선배님과 같은 분들의 수고로 후배된 저희들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제2의 6.25가 없도록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철저히 대비 해야겠습니다.
    공군인터넷전우회(www.kafi.net)
    예비역 병355기 손우석

  3. 명정희 2010.06.24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유비무환해서 나쁠 일은 없겠죠~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니....

  4. 이건우 2010.06.24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어버이 세대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6.25는 우리에게 가슴이 아픈 전쟁입니다.

    그 결과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죠..

    말씀하신 유비무환을 머리와 가슴속에 항상 새겨야 겠죠.

    그래야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5. 박재우 2010.06.24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투기 프로펠러를 손으로 돌리다니..
    초음속 전투기를 게임으로 조작하며 노는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네요..

    무스탕 전투기는 당시 최고의 전투기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전투기라 그런지 더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유비무환! 꼭 필요한 정신이라고 생각됩니다.

    제7공수특전여단 예비역중위 박재우

  6. 김경락 2010.06.24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복무했던 부대에 구보를 할 때마다 만나는 글귀.

    위국헌신.
    정말 군 복무라는게 힘들지만, 위국헌신의 마음으로 복무해야며
    적어도 복무 할 때 만큼은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길.

    저 역시 되돌아 보면 힘들었지만 즐거웠던거 같습니다.

  7. 이종국 2010.06.25 14: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입대 하던해에 전역 하셨군요.
    승호리철교를 직접 폭파하신 옥만호총장님에게서 직접 그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로카피스 5주년 기념식때 제가 10비까지 모시고 갔다 올때에...
    선배님들의 숭고한 정신 및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는것입니다.

    로카피스 병287기 이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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